본문 바로가기
유용할수다

오체 불만족, 장애를 이긴 희망, 용기, 감동

by 수다츄 2023. 1. 27.
반응형

"팔다리 멀쩡한 나도 살기 팍팍한데 장애우분들은 오죽할까?" 하루하루 허무하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체 불만족'을 정독한 뒤에는 충분히 희망, 용기, 감동으로 장애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장애를 긍정적으로 극복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오체불만족 장애
긍정과 노력으로 사지가 없는 장애를 극복한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자서전

 

1. 장애를 이긴 행복한 유년기

 

팔다리 없이 태어난 아들이지만 가족들은 그를 세상에 당당하게 공개했고 이웃들에게도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목청껏 울고 우유는 반밖에 먹지 않아 부모님을 걱정시키기도 했지만 9개월 때 말문이 트이고 '왕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개성을 우선시해 주는 유치원에 입학했습니다. 순수하게 팔다리가 왜 없냐는 질문에도 천진난만하게 "아! 엄마 뱃속에서 병에 걸려서 없는 거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질문이 두 달 넘게 반복되니 부담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씩씩하게 적응했습니다. 활달한 성격과 남다른 외모와 전동 휠체어로 이목을 끌며 골목대장과 유치원 반장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때 교육위원회가 장애의 강도가 심해서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신체검사를 요구하는 등 부모님의 마음고생이 심하였습니다. 오토는 심사위원 앞에서 걷기, 글씨 쓰기, 식사하는 모습을 떳떳하게 보여주고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1학년 때부터 4년 연속 담임이셨던 '다카키'선생님께서는 학급 친구들에 "시간이 걸려도 오토가 스스로 할 수 있게끔 기다려주고 도저히 안 되는 것만 합심해서 도와주자"라고 말씀하시며 똑같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쉬는 시간, 소풍은 물론 외야수, 마라톤 호위대 등 오토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체육활동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혹시나 거만함을 방지하고 성장기 근육 발달에 방해될까 봐 전동휠체어는 허락 없이 타는 걸 금지하셨고 처음에는 체력적으로 지치고 주변에서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훗날 이 경험이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 자유로게 다닐 수 있고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학년 때는 작은 팔다리에 성장통이 시작되면서 상상 이상의 고통을 겪었고 유치원 때 이어서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학교생활을 잘했던지, 문병을 오겠다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5학년 때는 담임선생님께서 퇴임하시고 '오카'선생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어차피 오토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맡기자"라며 워드프로세서를 활용해 학교에 관한 인쇄물을 담당하였습니다. 잘 소화해 내는 것을 보고 선생님께서는 장애우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하게 정해줘야 그들의 '미래'까지 보장할 수 있다고 하셨고 오토 역시 공감하였습니다.

아기 때부터 가정에서 장애를 숨기지 않고 유치원, 초등학교 때도 차별 없이 협동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오토의 유년기였습니다.

 

 

2. 축제의 소년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이어져 있고 친구들도 함께 가서 입학 과정이 제일 수월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서클 활동으로 농구부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때 부모님마저도 무리라고 하셨지만 맨몸으로 맹훈련하는 노력을 보이자 감독님께서는 시합에도 출전시켜 주셨습니다. 비록, 전력이 달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누구 하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팀워크를 보여주고 추억을 쌓았습니다. '축제의 사나이'라고 불릴 만큼 축제를 즐겼던 오토는 학년 별 선거에서 선출되는 문화제의 문화실행위원으로 2년간 활동하고 선·후배들의 지지를 받아 문화실행위원장까지 선발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하던 행사에 '빈 병 수거', '괴담 발표'등 새로운 활동도 추가하였습니다. 더불어서 3학년 때는 노력으로 끝나는 게 아닌 다 같이 즐기는 걸 목표로 문화제를 기획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새롭게 창조해야 해서 쉽진 않았지만 물이 가득 담긴 세숫대야에서 오래 버티는 '학급 대항 게임'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즐거움과 책임감으로 진정한 '축제의 사나이'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100년이 넘는 명문고에 진학하기를 희망하였는데, 일반인 기준 전철 편도 1시간 넘는 거리라 오토에게는 무리였습니다. 그가 원하자 부모님은 10년 이상 살았던 터전을 흔쾌히 떠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의지보다는 수많은 경쟁자들이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내신 점수 중 국어, 영어, 수학, 사회, 이과 5과목은 우수했지만 상대평가인 체육이 불리했던 오토는 실전 시험에서 월등하게 높은 성적을 내어 최종 합격을 거머쥐었습니다. 입학 후, 서클 활동이 더 활성화된 분위기의 학교에 오토는 미식축구부에 지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농구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활동이었기에 [ 운동에서는 제외되었지만 감독님과 코치님의 배려로 인해 '플레이 데이터 정리'를 담당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워드프로세서 경험으로 잘 수행하여 선수, 매니저, 코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2학년 가을부터는 우리 반은 아마추어 연극을 시작했는데 다른 친구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더 역량 있는 학생을 감독으로 추천하고 오토는 주변을 챙기는 조감독 포지션에 집중하여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도전하며 주변에 사람을 모르고 자신을 발전시킨 오토의 청소년기였습니다.

 

 

3. 오체불만족을 넘어 현대가 원하는 사람으로

 

학교 활동은 열심히 했지만 '인생의 뚜렷한 목표 없이 대학에 가고 싶진 않다.'라는 생각으로 공부랑은 담쌓아서 결국 재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집중 공부가 아닌 적절한 휴식 타임과 취약과목에 시간 비중을 많이 둔 전략 학습법으로 일본최고 명문 와세다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학과와 더불어 웅변대회랑 국제경제 경영 학생협회에 가입하여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특히, 학생협회에서 비즈니스에 관한 토론, 현장 견학, 세미나 참석 등으로 예비 사회인의 기초를 다지고 '생명의 거리 만들기'활동을 통해 깡통 회수기를 설치하여 '쓰레기 제로'를 실현하였습니다.

이후, '마음의 장벽 없애기'캠페인의 참여를 제안받아 연설도 하고 장애물이 없는 신축 건물을 짓는데  일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오토의 활동들이 신문과 텔레비전에 소개되고 순식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유명 인시가 되어 강연 활동도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20대의 나이로 심포지엄의 실행위원장을 맡아 '21세기를 담당할 인재'라는 찬사까지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함께 보면 좋을 사례를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큰 꿈을 가져라! 위기가 만드는 위인

누구나 알만하고 존경받는 위인들은 위기가 만드는 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는 딴판이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들도 여러분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

ssmsdbsd.tistory.com

 

 

표면적으로는 오체불만족을 넘어 사지가 없는 불리한 조건으로 태어난다면 낙오자의 삶으로 단정 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가정과 학교에서 특별함이 아닌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봐주고 본인 스스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만족하는 삶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이렇듯, 혹시 나 혹은 주변에 장애나 시련으로 좌절한다면 '오체불만족'을 통해 긍정적인 삶을 그려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

댓글